정동진-정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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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에서 해 뜨는 걸 보고 출발해서, 그 해가 지기 전에 정서진에 도착하는 라이딩을 다녀왔어요.
로라방에서 같이 탈 사람을 모집하길래 신청했어요. 서포트카가 물이랑 먹을 것도 챙겨주고 길 안내까지 해준다는데,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저는 페달만 굴리면 된다니, 이런 귀족라이딩이 어딨어

전날 밤 10시에 로라방에 모여 서포트카에 자전거를 싣고 출발했어요.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자정쯤 정동진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잤어요. 새벽 4시 15분에 일어났더니 역시 피곤하더라고요ㅋㅋ
일출이 5시쯤이고 일몰이 저녁 8시 가까이였으니, 시간이 거의 15시간이나 있었어요. 이때는 그 정도면 아주 넉넉하다고 생각했어요.

일출 기다리는 중. 그래도 이때까진 설렜어요.
빠뜨린 게 없나 한 번 더 확인하고, 타이어에 바람을 채웠어요. 바나나 두 개랑 젤리도 먹어뒀어요.

그러니까 지금 뜨는 저 해보다 먼저 도착하면 되는 거죠? 라고 하면서 여유 부리는 중
원래는 대관령을 넘고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이 시간에도 문을 연 순두부집이 있더라고요. 순두부 정식부터 먹고 출발하기로 했어요.

보기엔 심심해 보이는데 기본 간은 되어 있었어요. 그래도 오늘 땀을 많이 흘릴 것 같아서 간장을 조금 더 넣어 먹었어요. 타고 나니 좀 더 넣어도 됐겠다 싶었고요.

대관령에 들어섰어요. 오르막이 12km쯤 이어지는데, 한참 올라온 것 같아서 속도계를 보면 거리가 그대로인 기분이었어요. 결국 중간에 사진 한 장 찍어뒀어요.

마음에 드는 사진도 하나 건졌어요 ㅋㅋ

차도 거의 없었고, 올라온 만큼 강릉이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오르다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풍경이었어요.
장거리 후기에서 초반에 존 2를 넘기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봐서 저도 심박을 신경 쓰면서 탔어요. 적어도 170은 넘기지 말자는 생각이었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오르막에서 150 아래로 유지하기는 어렵더라고요. 대관령에서는 대부분 존 3으로 올라간 것 같아요.

드디어 대관령 정상. 올라오니 바람이 시원해서 출발할 때보다 훨씬 탈 만했어요. 그런데 정상에선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자전거를 들고 옮기다가 바람에 자전거가 날려서 깜짝 놀랐어요.
대관령 다운힐이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날 제일 재밌게 탄 구간이었어요. 경사가 급하지도 않고 코너도 많지 않은 데다 시원하고 풍경까지 좋았어요. 돌이켜보면 마음 편하게 즐긴 건 여기까지였네요.
내려와서 편의점에서 잠깐 보급하고, 80km쯤부터 120km 부근까지는 제가 선두에서 끌었어요. 아직 더위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전이라 속도도 잘 나고 심박도 그럭저럭 관리됐어요.

표지판을 보다가 새삼 정신이 들었어요. 양평 지나서 남양주, 구리, 서울을 거쳐서 인천 끝까지 가야 한다고요?

점심은 막국수랑 수육, 메밀전이었어요. 수육이 정말 맛있었는데 기름진 부분이 많아서, 타다가 속이 불편할까 봐 조금만 먹었어요. 아직도 생각나네요.
옛집을 고친 식당이라 마당에 수도가 있었어요. 허락을 받고 세수도 하고 다시 출발할 준비를 했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정동진에서 왔고 정서진까지 간다고 하니까 “그게 말이 돼요?” 하시더라고요.
같이 타는 분들은 자꾸 저더러 “랜도 뛰시는 분이라 괜찮으신가보다” 하셨는데, 저 브레베 200km 딱 한 번 타봤거든요. 아무튼 점심 이후로는 힘들어서 선두에 안 섰어요.

가는 길에 무밭이 있길래 찍어봤어요.

대관령만 넘으면 큰 고비는 끝인 줄 알았는데, 작은 언덕들이 낙타등처럼 계속 이어졌어요. 덥고 습해지니까 평소 같으면 한 번에 넘겼을 언덕도 하나씩 끊어서 가게 되더라고요.
언덕마다 서포트카를 세워 물을 채우고, 머리에 물을 뿌리고, 바나나를 먹었어요. 그날 서포트카가 없었으면 저는 끝까지 못 탔을 것 같아요.

나름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비슷한 풍경만 잔뜩 찍었더라고요.

이런 논을 구경하면서 가다가 오르막을 만나면 슬슬 풍경이고 뭐고 눈에 안 들어왔어요.
기온이 오르니까 180W쯤만 내도 심박이 165까지 올라가더라고요. 아침에 생각했던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어요.

솔직히 이쯤부터는 재미없고 집에 가고싶었어요 ㅋㅋ

그래도 어느새 서울까지 100km. 아스팔트에선 열기가 올라오고, 체력은 떨어지고, 차랑 같이 달리는 도로에선 계속 긴장했어요.
저는 앞쪽에 있어서 몰랐는데, 뒤쪽에서 한 분이 넘어지셨다고 들었어요. 다행히 종아리가 살짝 까진 정도였는데, 자전거는 안장이 레일에서 통째로 떨어져 나갔더라고요.
전날 다이소에 설탕을 나눠 담을 지퍼백을 사러 갔다가, 이상하게 덕테이프도 하나 사고 싶었어요. 브레베 후기에서 요긴하게 쓰는 걸 봤고, 서포트카에 실어두면 되니까 그냥 챙겼거든요. 그런데 정말 쓸 일이 생겼어요.

덕테이프로 안장을 임시로 고정했고, 넘어진 분도 다시 출발하셨어요. 덕테이프는 신이다

본격적으로 자전거도로에 들어서면서 서포트카는 먼저 정서진으로 보냈어요. 더워서 그런지 길이 한산하더라고요. 공도에서 계속 긴장하다가 차가 없는 길에 들어오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양수역까지는 그늘도 제법 있고 풍경도 좋았고요.
이쯤에서 남은 거리가 100km로 줄었는데, “다왔다 백키로만가면됨” 하면서 웃기도 했어요 ㅋㅋ

양수역에 도착해서 편의점 보급을 했어요. 벨로라운지 간판 옆에는 제비가 집을 지었는데, 그게 참 귀여웠어요. 저는 얼음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어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었어요.
남은 거리는 90km쯤, 해가 지기까진 세 시간쯤. 말은 안 했지만 슬슬 시간이 신경 쓰였어요. 남은 오르막은 아이유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넘는 게 전부라 코스 부담은 덜했는데, 한강 자전거도로에 사람이 많으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어요.

양수철교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에요. 그런데 막상 다리를 건너려니, 이제부터는 남은 길이 다 아는 길이라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날이 쨍해서 사진은 잘 나왔네요. 이 뒤로는 시간도 체력도 빠듯해서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어요. 잠원에서 잠깐 물을 채우고 계속 달렸어요.
다행히 자전거도로에 걱정했던 것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어요. 반포쯤이었나, 포켓몬 행사가 열리는 곳에선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 분들이 많아서 지나갈 때 긴장이 많이 됐어요.
아라뱃길 입구쯤에서 20km 정도 남았는데, 해가 내려가는 게 바로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건 아는데 속도계 숫자는 왜 그렇게 안 줄어드는지. 남은 거리만 자꾸 확인했어요.

일몰 전에 정서진 도착!
도착하고 보니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는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늦게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아침에 해 뜨는 걸 보고 출발해서 저녁에 해 지는 걸 보며 하루를 마쳤네요.

사진을 찍고 같이 탄 분들을 기다렸어요. 다들 어떻게든 끝까지 들어오시더라고요. 마지막엔 저도 체력이고 정신이고 바닥나서 앞사람 따라가기 바빴어요. 같이 온 분들을 좀 더 챙겼으면 좋았겠다 싶더라고요.
진짜 이날이 자전거 탄 날 중에 제일 힘들었어요 ㅋㅋ

바닥에 주저앉아서 보니 다리가 이 모양이더라고요. 쉴 때마다 선스프레이를 덧뿌렸는데도 이렇게 탔어요. 중간중간 물 고인 곳을 지나서 다리는 또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그래도 중간중간 잘 먹고 물을 자주 마신 덕에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타는 동안 응원해 주신 분들께는 답글을 못 달았는데, 덕분에 정말 힘이 났어요.
이번에 잘 챙겨 먹은 것 중 하나가 설탕물이었어요. 파워젤은 뜯으면 한 번에 먹어야 해서 타이밍이 애매할 때가 있는데, 설탕물은 가민에서 보급 알림이 뜰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기 편했어요. 설탕물 한 모금, 물 한 모금 하는 식이었어요. 막판에 서포트카랑 타이밍이 어긋나서 두 팩밖에 못 먹었는데, 한 팩만 더 있었으면 마지막에 힘을 좀 더 낼 수 있었겠다 싶어요.
도착했을 땐 다시는 하지 말자고 했는데, 돌아보니 꽤 괜찮았어요. 강원도에서 달린 길도 좋았고, 양수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도 예뻤고요. 한강은… 한동안 안 타도 될 것 같아요.
집에 와서는 빨래만 간신히 돌리고, 저녁도 못 먹었길래 컵라면 하나 먹고 잤어요. 자전거도 닦고 장비도 정리해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하고요. 그래도 큰 거 하나 해냈네요. 아우 힘들어